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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펌질

소통 실패와 의견수렴 실패의 차이 - 우석훈

내가 살펴본 명박은 비대칭성이라는 이론에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 - 예를 들면 정주영 - 과 그와의 관계가 비대칭적이고, 그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또한 비대칭적이다.

 

리더십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리더십이라는 얘기를 써보면 그는 전형적인 비대칭적 리더십의 지도자인 셈이다 (그가 누구를 어떻게 지도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그에게 소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탑재되지 않은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소통이라는 질문 자체가 정말로 90년대 이후에나 지금과 같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굉장히 최근 개념이고, 냉전 구도가 깨어지면서 수평적 질서로서의 세계를 사람들이 상상하면서 나타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버마스식의 소통이라는 개념 자체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여기에서 학자든, 전문가든, 혹은 빅 마우스든, 하여간 이런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이바구'를 하고 여기에서 상식선에서 어느 정도의 대체적 합의 같은 게 가능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명박에게는 사랑방이라는 개념이 아마도 탑재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식으로 사랑방은 가부장적 질서의 주인이 식객이나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적 부도 어느 정도는 과시하고, 그 과정에서 재미나 흥 같은 것을 만든다는 의미 정도가 될 것 같다.

 

황제 테니스를 즐겼다던 명박에게 그렇게 사랑방 개념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소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도 여전히 논란거리이기는 하지만, 명박의 소통 능력이라는 것은 가히 엽기적이지 않을까?

 

하여간 좋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 민주질서의 지도자로서 명박을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에게 소통에 더 신경을 쓰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돼지 발에 진주와 같아 보인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정부가 정부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대전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의견수렴을 하고, 그것이 간혹한 지배자의 간계에 의한 것이든 혹은 선의의 통치자의 자기 전략이든, 뭔가 조금씩 양보를 하면서 세상이 조금은 더 균형점에 가까와진다는 전제일 것이다.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도 없고, 또 있어서도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 우리가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월드컵 축구 대표팀 응원. 안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축구 안 좋아하거나 국가대표팀의 특정 선수를 안 좋아하거나, 지나친 국가주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김연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국론통일 같은 말 같은 게 정말 웃기다고 생각한다. 국론이 통일된다면, 그건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원래 의견은 분열되고, 다양한 것인데, 그 다양함 속에서도 어쨌든 행정 행위를 만들어내고, 그 행정 행위를 조금씩이라도 - 때때로 일거에 - 바꾸면서 가는, 그야말로 "답은 없어도 모두들 답을 향해서 가고 있다고 믿는", 그런 민주주의 장치 같은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명박의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소통 실패의 단계를 지나서, 행정적 의미의 의견수렴에서 실패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정서적이며 원칙적인 의미의 소통 실패는 작년에 이미 지났고, 지금의 상황은 기술적이며 행정적인 의미에서의 의견수렴도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속도전이나 강행과 같은 것들은 선후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는데, 결국 이런 조급함으로 의견수렴이 실패한 것이냐, 아니면 소통 실패의 당연한 행정적 귀결로서 의견수렴 실패가 생겨나는 것이냐라는 애매한 질문이 하나 있기는 하다. 어쨌든 결론은 같다. 지금은 심각한 의견수렴 실패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돌아가지를 않는다. 비록 형식적으로라도, 간담회, 연찬회, 토론회 그리고 각종 청문회나 혹은 조찬모임 등을 통해서 어쨌든 사회의 소위 스테이크 홀더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그런 것들이 미흡하더라도 의사결정 단계에서 일단 모여야 하는데...

 

정부는 이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 이견 당사자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나마 민주노총이나 전교조는 "죽이는 대상" 정도나 되는데, 그보다 더 작은 단위들, 예를 들면 특수한 분야의 비정규직 문제이거나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20대, 아니면 지방 거주 여성들이나 이런 작은 단위에서의 문제점들은 누군가 상향식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고 "아, 이런 문제가 있겠구나"라는 그야말로 '신의 섭리'와 같은 통합적 지도자의 결단으로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지금 명박 정부는 의견수렴의 실패 상태이다.

 

자, 이러면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까? 행정 자체의 비효율과 비능률 그리고 의견 차이에 의한 갈등만이 더 앞으로 나오게 된다. 한 마디로... 정부 안 돌아가게 된다.

 

현대 그룹에서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왕회장의 한 마디로 언제든지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지금 그렇게 원하던 자리에 가고 싶었던 명박에게는 그런 초법적 존재가 있을 리가 없다.

 

chaos라는 단어를 끌어들이자면, 지금 우리는 chaos로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