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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펌질

[펌] 스스로를 좌파라 믿던 어느 신자유주의자의 죽음 - 왼쪽날개

스스로를 좌파라 믿던 어느 신자유주의자의 죽음

왼쪽날개, 2009-05-25 08:49:53 (코멘트: 3개, 조회수: 241번)

1.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되뇌였다.
"노무현은 죽었다"
이 정리되지 못하는 감정을 정리해내기 위해선 그의 죽음을 우선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리 되뇌여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 복잡한 심정은 꽉 막혀버린 감정탓이었다.
나는 2002년 그의 당선을 바라보며 기뻐했지만 희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그의 죽음 앞에 슬퍼하지만 분노할 수 없다.

2.
그가 당선된 후 우리 안의 모든 이들은 "노무현 정권의 한계"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
난 그러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보수 정치권인 민주당의 한계와 무관하게 노무현 정권은 반드시 성공한 정권이어야 한다고 강변했던 것 같다.
혁명의 순간에 대한 꿈이 사라진 후 그의 집권은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장면 속에서 이루어졌다.
희망돼지 저금통...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렬한 열망 속에서 야인에 가깝던 그가 이뤄낸 불가능한 승리...
이 정권의 실패가 안겨줄, 저 뜨거운 열망들이 지니게될 상실감을 우린 걱정해야한다....

하지만 그는 끝내 실패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수많은 평범한 삶의 모습들 속에서 그 상실감이 재생되는 아픈 장면들을 끊임없이 목격했다.
그의 죽음의 주변에 안개처럼 뿌려진 수많은 감정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통곡과 오열조차
사라진 그가 아니라 그로 인해 꿈꾸었고 좌절했던 희망의 마지막 조각을 부여잡고 외치는 처절한 비명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3.
왜 그는 실패해야만 했을까....
이라크 파병 결정을 알리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던 그 날,
멍하니 TV를 바라보는데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지 모르던 그가 카메라맨을 향해 물었다.

"지금... 국민들이 절 보고 계시는 겁니까?"

그 순간, 가슴이 찡아게 아렸다.
" 미국에 고개 숙이지 않는 첫번 째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가 이라크 파병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컷다. 명백한 침략전쟁.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내야하는 왜소한 조국의 가련한 집권자를 보는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집권자가 고뇌할 수 밖에 없고, 넘어설 수 없는 어떤 벽이 있었다해도 안타까움은 있지만, 운동이, 진보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선을 그는 그렇게 넘어섯다.
애증이 뒤틀리며 아팠다.

그리고 그에게 분노해야하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왔다.
비정규직 노동악법과 이랜드-뉴코아 공권력 투입... 그리고 한미 FTA.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신은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너무나 이질적인 서로 다른 두 실체로 자신의 한몸을 규정하는 그를 보며
분열된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 후 진보정당의 후원자이자 조언자가 되고 싶다던 그는 진보에 대한 이상을 여전히 꿈꾸었지만 현실의 그는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불러온 것은 철학의 부재였다.

그에게 남아있는 가장 가슴아팠던 장면 하나는 집권 말기 제주 4.3 항쟁 기념식을 찾은 그의 사진을 접했을 때였다.
그는 분명 대통령으로써 4.3 항쟁 기념식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광주항쟁처럼 군부 쿠데타에 의한 살육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통성, 그 뿌리에서, 국가 그 자체에 의해 자행된 대량 민간 학살... 그 부끄럽던 과거를 집권자로써 인정하고 사과와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의 진정성은 차라리 서러웠다.
정말 그는 실패해선 안되는 대통령이었다.

4.
과거 모든 정권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열사들을 보내며 그 핏값을 받겠다고 분노했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 아래서 또한 열사들을 보냈고 공권력의 폭력에 분노했다.
하지만 노무현에 대한 원망은 결이 달랐다.
그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대중적 열망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품어낸체 적들과 같은 얼굴을 한체 실패했다.
그의 분열된 존재 만큼이나 그에대한 우리의 감성도 분열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웁게도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한몸이다.
죽음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분열된 그의 존재만큼이나 분열된 그에대한 우리의 감성도 힘에겹다.

그의 죽음으로 이젠 미워하거나 애증의 복잡함으로 바라볼 대상이 정녕 사라졌다.
그의 집권기간 내내 떠돌던 유행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그 노무현이 사라졌다.
애증의 대상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그의 실패를 대상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주체에 대한 평가로 강제받아야만 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아니라 그 실패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과제를 발견해야만 한다.

집권의 순간 그는 아무런 정치적 부채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직 그를 열망한 지지자들의 희망에 유일한 부채를 지니고 있었다.
민주당이라는 외형의 부채조차 분당으로 털어낸 그였다.
그는 어떤 정치집단에도 부채가 없었고, 그랬기에 실상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라크 파병이 독자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국제관계의 냉혹함에 무릎 꿇은 것이었다면
비정규직 노동악법과 한미 FTA 입법은 우익의 제도적 해법을 택한 선택의 실패였다.
하 지만 끝내 안타까운 것은 비정규직 양상으로는 민생경제를 파탄낼 뿐 중국과 같은 후발공업국에 의해 빼앗긴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살릴 수 없고 한미 FTA로는 이미 사멸하고있는 신자유주의의 패망을 피할 수 없다고 그것을 하지 말아야할 이유만이 있었을 뿐 우리에겐 노무현 정권을 견인할, 국가 운영을 위해 무언가 해야만하는 그를 설득할 좌파적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멸망하는 체제의 한 복판에서 집권자로써 무언가 해야만하는 그가 부여잡은 것들...
난 결코 그 선택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를 끌어당길 수 있는 좌파적 대안의 부재, 진보정치의 가난을 지금 직시할 뿐이다.

5.
그의 죽음과 함께 한 시대가 사멸했다.
7-80년대를 관통한 민주화 시대. 그 정치적 상징이되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상징하는 것은 사멸한 한 시대와 함께 그것을 대체할 대안의 부재... 위기다.
흔 히 386으로 지칭되는 민주화 세력. 그들은 정치집단으로써 시대를 책임질 이념적, 주체적 조건을 갖추는데 실패했다. 따라서 그 시대를 관통하며 형성된 대중적 열망이 존재조차 불확실한 그들 정치집단이 아닌 그 중 가장 매력적인 정치인, 인간 노무현을 통해 폭발하고 구현되었던 것은 그 이외엔 열망의 출구가 없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를 통해 집결했던 새로운 정치를 향한 열망들이 그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그 희망의 절박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 상실감에 흐르는 눈물을,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노빠"라 폄하하기엔 우린 부끄러워야 한다.
진정 우리가 좌파라면
그 열망의 응집과 폭발의 응결점은 바로 우리, 진보정치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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