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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은 남자/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프랑스 고3의 여름방학

  • 서래마을의 프랑스학교에서 교사를 했던 친구 올리비에는 한국 아이들의 꽉 짜여진 시간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꽉 짜여진 시간. 잠시 틈이 나면 그 아이들이 전자오락이나 TV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창조적으로 운용하는 걸 배우지 못한다. 이 상황을 좀 더 비약해 보면, 이들은 커서도 자신들을 조정하고 지시해줄 누군가가가 필요할지 모른다. 독재자는 그렇게 탄생한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고 불도저식 통치를 천명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냈던 젊은이들의 성향에 그런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어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기만 할까.
  • 올리비에에 이어 도미노 현상처럼 "체험! 삶의 현장"을 위해 한국에 와서 교사를 하던 질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가 파리에서 교사를 하던 시절, 한국학생에 한 명 반에 있었따.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추상적인 주제를 주고 네 마음껏 작문을 해보라거나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거의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쩔쩔 매더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그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 내가 어릴적엔 사과만 해도 국광, 홍옥, 부사, 인도, 델리셔스, 골덴 등 다양한 종류가 있어다. 닦아도 광도 안나고 깎이도 힘들었던 그 시골스럽던 국광,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아가씨같이 톡 쏘는 느낌의 홍옥, 신맛은 없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인도사과. 그런데 지금은 그냥 사과 하나만 있다. 부사와 홍옥을 60대 40으로 섞어놓은 듯한 그 '사.과'. 우리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필요 없이, 시장은 가장 포변적인 입맛이 선호하는 그 '사.과' 하나로 선택을 축소해 놓았다. 2007년 문화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들의 58.5%가 TV 시청에, 50%가 게임에 자신의 여가시간을 투여한다고 대답했다. 이 통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1998년 그 통계조사를 실시해 온 이후로, 한국 사람들의 문화활동 경험도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하강 중이다.
  • 칼리를 낳던 해, 칼리 고모의 막내아들 카헬은 고3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고모의 서해안 별장에서 함께 머물며 그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공부는? 전혀하지 않았다. 그와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른들 못지않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성숙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미술을 옵션으로 선택해서 바칼로레어를 치렀는데, 미리 주어진 몇 가지 주제 중에 백남준을 선택해 그의 비디오아트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비디오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 "다른 애들도 너처럼 여름방학 때 놀기만 하니?" 이 태평한 고3을 바라보다 못한 내가 물었다. 그의 대답이 방학은 쉬라고 있는 거란다. 물론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해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는 엔지니어 학교에 들어갔다.
  • 그의 유쾌한 18세의 여름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지옥같은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지옥을 겪은 댓가로 우린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18세의 젊은이들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갈 만큼 중요한 가치는 또 무엇인가?
  • ...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고 점점 더 강화시켜가는 경쟁과 긴장과 스트레스, 공포의 톱니바퀴는 거기서 뛰쳐나오거나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틀을 만들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의 삶을 갉아먹을 뿐이다. 모두가 연대해 미친교육의 고리를 격렬하게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